우리는 인공지능이 만든 시를 읽고, 그림을 감상하고, 심지어는 음악을 들으며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마음속에 이런 질문이 남는다. “AI가 정말 창의적인가?” 이 글에서는 창작의 본질을 되짚으며,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경계를 탐색해본다.
1. 창의성의 본질: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인가?
창의성은 오랜 세월 동안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여겨져 왔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는 개념은 고대 철학에서부터 현대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창의성의 핵심 정의로 자리잡았다. 플라톤은 예술가를 신의 영감을 받은 존재로 보았고, 칸트는 인간의 자율성과 의도가 예술의 본질이라 주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창의성은 단순한 조합이 아닌, 의도와 감정을 동반한 ‘의식적 생산행위’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부터 이 개념은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심리학자들이 창의성을 ‘기존의 아이디어나 사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하면서, 창의성은 더 이상 신비로운 능력만은 아니게 되었다. 게다가 진화심리학은 창의성조차 생존을 위한 적응 전략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인간이 창의적인 이유는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과 사회적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AI에게도 창의성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AI는 막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패턴을 도출해낸다. 이는 인간의 ‘창의적 재조합’과 유사한 형태로 해석될 수 있다. 딥러닝과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기술의 발달은 기존의 이미지를 재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창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OpenAI의 DALL·E, Google의 DeepDream, Runway ML 등은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창작물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AI는 본질적으로 인간이 제공한 알고리즘과 데이터 안에서만 작동한다. 그것은 ‘창조자’가 아니라 ‘해석자’ 혹은 ‘모방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AI는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지 않는다. 인간은 내면의 욕구나 철학적 물음을 예술로 표현하지만, AI는 명령을 따를 뿐이다. 창작의 의도가 없는 결과물은 진정한 예술인가?
향후 발전 방향은 ‘인간-AI 협업 창작’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AI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인간은 그것을 해석하고 조정함으로써, 창의성의 경계를 확장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창의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더욱 자주 던지게 될 것이다.
2. AI의 창작 사례 분석: 진짜 창의인가, 정교한 모방인가?
최근 몇 년 사이, AI의 창작물이 실제 미술 전시회에 출품되고, 음악 콘서트에서 연주되며, 시집으로 출간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50만 달러에 낙찰된 AI 그림 '에드몽 드 벨라미'가 있다. 이는 파리 기반 예술집단 ‘오비어스(Obvious)’가 GAN을 이용해 제작한 작품으로, 사람들은 그 작품을 "전통 회화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예는 ‘AIVA’라는 AI 작곡가이다. AIVA는 클래식 양식에 기반해 베토벤, 모차르트 스타일의 곡을 작곡하며, 실제로 영화 배경음악에 사용되기도 했다. 문학 분야에서도 'AI가 쓴 소설이 일본 문학상 예심을 통과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되었다. 이처럼 AI는 각 예술 장르에서 실제로 ‘창작자’로 기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창작은 진짜 창의성일까? 여기에는 AI의 ‘의도 결핍’과 ‘컨텍스트 부재’가 큰 논란거리로 남는다. 예를 들어, AI는 여성 인물의 초상을 그릴 수 있지만, 그것이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AI는 인간의 감정을 흉내낼 수는 있지만, 그것을 느끼지는 못한다. 즉, 창작물이 갖는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반영하는 능력은 AI에게 아직 없다.
또한 창작물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셋 자체도 인간이 선택한 것이다. AI는 자율적으로 무엇을 학습할지 결정하지 않으며, 창작의 방향성 역시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이는 AI가 본질적으로 '도구'이며, 그 작품의 창의성은 인간의 설계에 의해 규정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이런 논의를 통해 ‘창의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오히려 더 복잡해진다. 만약 우리가 AI가 만든 작품에서 감동을 느끼고, 그것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면, 그 창작물의 가치는 인간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인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감정의 유무보다는 결과물의 사회적 반응과 의미 전달 능력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을 수 있다.
AI의 창작 능력은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수준이다. 향후에는 스스로 컨텍스트를 학습하고,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다양한 문화적 메시지를 조합해내는 수준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그때가 되면, AI는 단순한 ‘도구’에서 ‘예술가’로 전환되는 임계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3. 창작 도구로서의 AI: 가능성과 한계 사이
AI를 창작의 주체로 보지 않더라도, 도구로서의 AI는 이미 현대 예술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음악, 미술, 영상, 문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AI는 작가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어, 미술 분야에서는 Midjourney나 DALL·E와 같은 생성형 AI가 디자이너의 스케치를 기반으로 다채로운 스타일을 제안한다. 이는 창작의 속도를 높이고, 작가가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표현 방식을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문학에서는 Grammarly, Sudowrite 등 다양한 AI 도구가 문장 추천, 흐름 개선, 아이디어 발굴 등의 역할을 한다. 특히 소설가나 시인은 AI를 통해 블록이 걸린 창작 과정에서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음악에서는 AI가 자동으로 화음을 추천하거나, 특정 감정에 맞는 멜로디를 작곡해주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영화 편집에서도 AI는 가장 효과적인 컷을 자동으로 선택하거나, 관객 반응을 예측해 예고편을 제작하기도 한다.
이러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AI는 여전히 인간의 ‘의도 해석’과 ‘비판적 사고’를 대체하지 못한다.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그럴듯한’ 결과를 도출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의미 있는 선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철학, 사회적 메시지, 내면의 갈등은 AI가 이해하고 표현하기에는 아직 먼 이야기다.
게다가 창작도구로서 AI가 너무 강력해질 경우, 예술의 진정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누구나 AI로 멋진 그림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이지만, 동시에 ‘예술가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든다. 창작의 노동과 고통이 사라질 때, 우리는 예술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러한 점에서 창작도구로서 AI는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하기보다는 확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작가는 AI를 파트너로 삼아 더 넓은 세계를 표현할 수 있으며, 기술은 새로운 감각의 미학을 가능하게 만든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AI와 인간의 경계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 협업 속에서 어떤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탐색이다.
4. 미래의 창의성: 인간과 AI의 경계는 무너질까?
미래의 예술 세계는 인간만의 공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전 세계 곳곳의 예술제, 비엔날레, 미디어 아트 행사에서는 AI 아티스트가 정식 출품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일부는 인간 아티스트를 제치고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는 ‘창작 주체’로서 AI의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흐름이다.
AI는 기존의 창작 방식과는 전혀 다른 접근을 취한다. 인간은 보통 의도와 감정을 기반으로 작업하지만, AI는 방대한 데이터에서 추상적인 규칙을 찾아낸다. 이러한 ‘비의도적 창작’은 때로는 인간의 상상력보다 더 기이하고 매혹적인 결과를 낳는다. 예를 들어, GAN을 활용한 초현실적 이미지나, Transformer 기반의 서사 생성 모델은 기존 문학과는 다른 스타일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창작을 정의하는 기준을 재정립해야 할지도 모른다. 의도성, 자율성, 감정 같은 전통적인 요소들이 꼭 필요한가? 혹은 새로운 시대에는 ‘작품이 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느냐’가 더 중요해지는 것일까? AI가 만든 시가 우리를 감동시키고, AI가 작곡한 음악이 우리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면, 그 예술의 가치를 부정할 수 있을까?
향후 발전 방향은 ‘공진화(co-evolu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인간과 AI는 서로를 자극하며 새로운 예술적 양식을 만들어갈 것이다. AI는 인간의 감정을 해석하고, 인간은 AI의 규칙성과 우연성 사이에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한다. 이러한 흐름은 창의성의 개념을 ‘단독 작가 중심’에서 ‘협력적 창조성’으로 이동시키는 계기가 된다.
궁극적으로 미래의 창의성은 인간만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AI는 창작의 노동을 분담하고, 영감을 제공하며, 새로운 형식을 제안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인간은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감각과 철학적 깊이로 예술을 완성할 것이다. 이 둘의 만남이 만들어내는 예술은, 지금까지의 예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의 이야기를 써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