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연주자가 오케스트라 공연을 위해 악보를 받아들었을 때, 그것이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작곡한 곡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을까? 음악의 흐름, 감정의 파형, 그리고 정교하게 짜인 구조 속에 숨겨진 ‘비인간성’을 감지할 수 있는 연주자는 과연 존재할까? 이 글에서는 AI 작곡가가 창작한 클래식 음악의 본질을 파헤치고, 연주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탐구해본다.
1. 인공지능 작곡의 탄생: 클래식 음악을 학습한 기계들
AI가 클래식 음악을 작곡할 수 있게 된 것은 단순한 기술적 우연이 아니다. 음악 이론, 화성학, 리듬, 프레이징 등 인간이 수백 년간 축적해 온 음악적 규칙과 스타일이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었기에, AI는 이를 학습하고 재생산하는 데 있어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초기 AI 작곡 시스템은 마크로프 체인 같은 확률 기반 알고리즘을 사용해 음의 전개를 예측했지만, 이제는 딥러닝 기반의 신경망이 작곡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특히 RNN(순환 신경망), LSTM(Long Short-Term Memory), Transformer 같은 모델이 도입되면서 AI는 단순한 패턴 복제에서 벗어나 음악의 흐름과 구조를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대표적인 AI 작곡 플랫폼으로는 OpenAI의 MuseNet, Google의 Magenta, Sony의 Flow Machines 등이 있다. 이들 시스템은 수천 곡 이상의 고전 클래식 데이터를 학습하여, 모차르트의 화성과 바흐의 대위법을 혼합한 곡을 창작하거나, 라흐마니노프풍의 감성을 덧입힌 현대적인 곡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AI는 단지 음표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음계의 조화, 악기 간의 균형, 감정의 흐름까지 계산한다. 마치 음악이 ‘수학적인 감성’으로 재해석되는 셈이다.
AI 작곡의 가장 큰 특징은 반복과 조화다. 인간 작곡가는 무의식적으로 실수를 하거나, 감정에 따라 불균형한 구성을 하기도 하지만, AI는 일관된 논리와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그 결과 매우 정교하고 완벽해 보이는 음악이 탄생하지만, 때때로 그 안에서 ‘인간적인 불완전성’이 결여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는 AI가 클래식 작곡에서 새로운 길을 제시함과 동시에 인간 작곡가의 창조적 비합리성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2. 연주자의 직관과 AI 작곡의 간극: 감지 가능한 비인간성
연주자들은 단순히 음표를 소리로 전환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악보에 담긴 감정, 호흡, 의도를 해석하여 청중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번역자다. 그렇다면 이 정교한 감성 번역자들은 AI가 작곡한 클래식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기운을 감지할 수 있을까?
많은 전문 연주자들은 “어딘가 어색하다”는 직관적인 느낌을 AI 음악에서 받는다고 말한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음악의 전개가 너무 매끄럽거나, 감정의 고조가 기계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인간 작곡가는 긴장과 이완의 균형을 일부러 깨뜨리기도 하고, 의도적인 전조나 리듬의 비틀림을 사용해 청중을 놀라게 한다. 하지만 AI는 학습한 평균값을 기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정형화된 흐름을 만들어낸다.
또한, 연주자들은 ‘호흡’의 부재를 언급한다. 인간 작곡가는 자연스러운 쉼과 흐름을 인지하고 그것을 악보에 반영하지만, AI가 만든 곡은 이러한 숨결이 부족할 수 있다. 마치 잘 정리된 문장이지만, 감정의 여백이 부족한 문학 작품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실내악이나 독주곡처럼 연주자의 감정 표현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장르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모든 연주자가 AI 작곡의 정체를 간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AI 곡은 충분히 인간적이며, 일부는 오히려 인간 작곡가보다 더 세련된 구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로 여러 실험에서 전문 연주자들이 AI 작곡과 인간 작곡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사례도 많다. 이는 AI가 이미 인간 작곡 스타일을 상당 수준으로 복제하는 데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결국 AI 작곡과 연주자 간의 간극은 점차 좁혀지고 있으며, 감정의 ‘표현자’인 연주자조차 그 출처를 정확히 식별하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는 연주자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누구의 감정을 연주하고 있는가?”
3. 클래식 음악의 본질과 AI의 도전: 감정, 형식, 창조성의 삼각관계
클래식 음악은 단지 아름다운 소리의 조합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서사이고, 시대와 사회, 철학과 사유가 녹아 있는 복합적 예술이다. 그렇기에 AI가 클래식 음악을 ‘형식적으로’ 흉내내는 것은 가능하나, 그 본질을 담아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감정과 철학은 데이터화하기 어려운 비가시적 영역이며, AI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비형식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
클래식 음악은 많은 경우, 작곡가의 생애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쇼팽의 피아노곡에서 느껴지는 유랑자의 슬픔, 말러의 교향곡에서 드러나는 실존의 불안, 베토벤 후기 현악 사중주에서의 고독과 초월은 단지 화성과 선율의 배열로 설명될 수 없는 감정이다. AI는 이와 같은 맥락과 감정의 깊이를 인지할 수 없기에, 그 재현은 구조적 모방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AI는 인간이 통상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방식으로 음악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창의적이다. AI는 특정 형식을 고수하지 않으며,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미묘한 통계적 패턴을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감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 작곡가는 드물게 사용하는 음계나 리듬 구조를 AI는 거리낌 없이 활용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신선한 감각을 창조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AI는 ‘감정의 서사’와 ‘형식의 혁신’ 사이에서 모순적 위치를 점하게 된다.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가 새로운 감정적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은, 클래식 음악의 정의 자체를 재검토하게 만든다. 인간은 감정을 담아 작곡하지만, AI는 감정을 유도할 수 있는 형식을 계산해낸다. 이 차이는 크면서도, 때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앞으로 AI가 클래식 음악의 구조를 넘어 그 철학적 본질에까지 접근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것이다. 이는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4. AI와 연주자의 공존: 미래 음악의 새로운 협업 모델
AI가 만든 클래식이 점점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워진다면, 연주자들은 AI를 경쟁자로 여겨야 할까? 아니면 새로운 창작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할까? 정답은 후자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이미 많은 연주자들은 AI와의 협업을 실험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AI가 만든 기본 작곡을 연주자가 해석하고 수정하는 방식, 또는 연주자의 연주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맞춤형 곡을 만들어주는 방식 등이 현실에서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협업은 ‘기계의 계산력’과 ‘인간의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양자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는 형태다.
연주자 입장에서도 AI의 존재는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다. AI는 기존 작곡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때로는 예상 밖의 화성이나 리듬 구조를 제시함으로써 연주자에게 창의적인 해석의 폭을 제공한다. 이는 연주자의 예술적 감각을 확장시키고, 연주의 다변화를 이끄는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AI는 교육적 도구로서도 유용하다. 연주자는 AI가 제안한 다양한 버전의 작곡을 비교하며 자신의 해석을 훈련할 수 있고, 악보의 구성 원리를 분석함으로써 음악 이해력을 높일 수 있다. 이렇게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연주자의 예술적 성장을 도와주는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물론 AI와의 협업이 전통적인 음악 세계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작곡가의 역할이 축소되고, 예술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는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은 여전히 예술의 중심에 있으며, AI는 그 가능성을 확장하는 존재로 기능할 뿐이다.
미래의 음악은 인간과 AI가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협업의 장이 될 것이다. AI 작곡가가 만든 클래식을 연주하는 행위는 단순한 ‘연주’가 아니라, ‘기계의 사고’를 인간이 해석하고 표현하는 새로운 형태의 창작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음악의 미래를 함께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