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창작의 영역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우리는 예술의 정의와 경계를 다시 묻게 되었다. 특히 AI가 생성한 예술작품의 저작권을 누구에게 귀속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단순한 기술 논쟁을 넘어 법, 윤리, 철학의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이 글에서는 AI 아트의 법적 지위, 창작 개념의 재정의, 기술과 인간의 협업 가능성, 그리고 미래의 예술 생태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깊이 있게 살펴본다.
1. 창작의 정의와 AI의 역할: 창조자는 누구인가?
인류는 오랜 시간 예술을 ‘인간의 표현’으로 이해해왔다. 감정, 기억, 철학, 사회적 맥락이 결합되어 형상화되는 이 행위는 오직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으로 여겨졌고, 따라서 창작의 결과물은 창작자의 정신적 산물이라는 전제 하에 법적 권리가 부여되어왔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등장, 특히 생성형 AI의 발전은 이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생성형 AI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 학습을 기반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를 두고 일부는 “창작이 아니다, 단지 모방일 뿐이다”라고 단정하지만, 오늘날의 AI는 단순한 복제가 아닌 변주와 재해석의 과정을 거친 결과물을 생성한다. 이는 인간 예술가의 창작 행위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는 점에서 문제는 복잡해진다.
창작의 개념은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AI가 그린 그림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그림은 수천만 개의 이미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이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 결과물에서 인간의 손길은 사라져 있고, 설계자나 사용자의 개입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이 창작물은 누구의 것인가? AI인가, 그것을 만든 프로그래머인가, 아니면 단지 버튼을 누른 사용자인가?
일부 국가의 저작권법은 여전히 ‘자연인’에게만 저작권을 인정한다. 예를 들어 미국 저작권청은 2022년 AI가 생성한 작품에 대해 저작권 등록을 거부했으며, 유럽연합 역시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 저작권법이 ‘창작자의 인격’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곧 법과 현실의 괴리를 의미한다. 수억 원의 가치를 가진 AI 미술작품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그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이러한 논의는 결국 "창작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물음으로 귀결된다. 인간이 기계에 창작의 자율성을 부여했을 때, 그 결과는 여전히 인간의 창조물인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존재의 창조물로 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아직 없지만, AI 시대의 창작과 저작권 논의는 반드시 창작의 정의부터 다시 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2. AI 작품의 법적 지위: 사각지대에 놓인 창작물
AI가 만든 예술작품은 법적으로 누구의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국가와 지역, 그리고 해석하는 법률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대부분의 기존 저작권 체계는 '인간'이라는 전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자연인'인 인공지능의 산물은 법적 공백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은 AI 아트의 유통, 상업화, 소유권 귀속에 실질적인 장애가 되고 있다.
미국 저작권청은 AI가 단독으로 만든 작품에 대해 지속적으로 등록을 거부해왔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022년, AI '크리에이티브 머신'이 만든 작품을 저작권 등록하려 한 사건이 있다. 법원은 인간의 창작이 아닌 작품은 보호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는 곧 'AI가 만든 것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라는 해석으로 이어져, 상업적 가치를 가진 작품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역설을 낳는다.
반면, 영국은 약간 유연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저작권법 9조에 따라 ‘컴퓨터가 생성한 창작물’의 경우 이를 작성한 사람(예: 프로그램 설계자)에게 저작권이 귀속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를 ‘작성’이라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해석 여지가 존재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창작자, 기업, 경매업자 모두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한 AI 작품이 경매에서 수억 원에 팔렸다고 해보자. 그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단순히 클릭 한 번으로 이미지를 생성한 사용자일까? 아니면 AI 모델을 설계한 개발자일까? 혹은 데이터를 학습시킨 기업일까?
결국 현행 법제도는 AI 아트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빠른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 AI의 창작물이 법적 사각지대에 머무는 한, 그 어떤 혁신도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없다. 미래에는 저작권의 개념 자체가 '창작의 행위성'보다 '창작의 결과물' 중심으로 재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기술이 주체가 되는 창작 시대에, 법도 그만큼 유연해져야 한다.
3. 인간과 AI의 협업: 새로운 창작의 패러다임
AI의 등장으로 위협받는 것은 단지 예술가의 생계만이 아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개념 자체가 도전받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AI는 예술가에게 새로운 도구이자 협업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인간과 AI의 협업은 단순히 역할 분담을 넘어, 전혀 새로운 창작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미 많은 예술가들이 AI를 창작의 보조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디어 아티스트 마리오 클링게만(Mario Klingemann)은 AI를 이용해 고전 화풍을 기반으로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이미지를 창조하며, 이 과정을 ‘예술적 공동 작업’이라 부른다. 그는 AI를 "무한한 상상력을 가진 제2의 자아"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협업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도 유발한다. 결과물이 AI에 의해 생성되었더라도, 그 과정에서 인간이 방향을 제시하고 피드백을 제공했다면, 이 역시 창작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전통적으로 예술가는 캔버스를 직접 만지고 붓질을 해야 한다고 여겨졌지만, 디지털 시대의 예술은 그 경계를 이미 허물어왔다. AI는 이 흐름을 더욱 가속화하는 촉매제일 뿐이다.
앞으로의 창작은 인간-기계 간의 조율 능력에 달려 있다. 인간은 개념과 철학, 감정을 설정하고, AI는 그 기저에 깔린 무한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를 시각화하거나 음향화한다. 이 과정에서 AI는 인간이 생각하지 못한 결과를 제시하며, 인간은 그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작업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AI는 예술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의 창의력을 더 확장할 수 있게 하는 촉진제다. 이러한 협업의 흐름 속에서, 저작권의 개념 역시 공동 저작권(Co-authorship)이나 창작 권한의 분산 모델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기술의 발전이 협업과 창조의 기회를 확대시킨다면, 우리는 단지 누가 작가인가를 묻는 것을 넘어, ‘무엇이 창작인가’를 다시 쓰게 될 것이다.
4. 미래의 저작권 시스템: 기술과 법의 공존을 위한 제안
AI 아트와 관련된 저작권 문제는 단순한 소유권 분쟁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법과 기술의 공존 방식을 재정립하는 문제다. 기존 저작권법은 산업시대의 틀을 기반으로 구축되었고, 디지털 혁신과 AI의 등장은 이 체계의 유효성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법이 아닌, 미래를 향한 법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AI 생성물에 대한 새로운 권리 개념 도입이 필요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AI 제작물 권리’라는 새로운 법적 지위를 도입하자고 제안한다. 이는 기존의 저작권과는 구별되며, AI가 만든 콘텐츠에 대한 일정한 권리와 보호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이 권리는 단기적 보호, 예를 들어 5~10년의 보호 기간을 갖고, 주체는 해당 결과물을 생성한 알고리즘 설계자나 사용자에게 부여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투명성’이 핵심이다. 어떤 AI가 어떤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과물을 생성했는지 명확히 기록하고 공개하는 시스템, 즉 ‘AI 생성물 이력서(AI provenance)’ 같은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유사 저작권 침해나 데이터 출처의 불명확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으며, 저작권 분쟁의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협업 기반 창작물에 대한 공동 저작권 시스템이 법제화되어야 한다. AI와 인간이 공동으로 창작한 작품은, AI 사용자의 기여도를 법적으로 평가하여 일정 지분의 권리를 인정하는 방식이 적절하다. 이는 기존의 작가-편집자 모델처럼, 창작 주체가 단일하지 않은 현대 예술의 다변화된 현실을 반영하는 제도적 전환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적인 조율과 표준화가 필요하다. AI는 국경을 초월한 기술이기 때문에, 한 국가의 법으로 모든 사례를 해결하기 어렵다. 따라서 WIPO(세계지식재산권기구)나 UNESCO 차원의 국제 협약이 마련되어야 하며, 각국은 이를 바탕으로 자국의 법제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AI 아트는 이미 현실이 되었고, 우리는 이 흐름을 막을 수 없다. 이제 중요한 것은, 기술이 만들어낸 창작물에 대해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어떻게 보호할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저작권은 단지 권리를 주고받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기술이 공존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일환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